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이사르의 내전 (문단 편집) === 전투 후 ===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진영을 함락시킨 뒤 병사들에게 약탈을 금지시키고 계속 전투에 임하라고 명령한다. 폼페이우스 병사들의 대부분은 언덕 위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총사령관과 지휘관 대부분이 내뺀 상황임에도 바로 항복하지는 않고 라리사로 퇴각할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카이사르는 병력을 나누어 하나는 폼페이우스 진영에, 다른 하나는 아군 진영에 남기고 본인은 4개 군단과 함께 폼페이우스군의 행군로를 차단하였다. 폼페이우스군은 언덕 위에 자리를 잡는다. 카이사르는 밤에 참호를 파서 폼페이우스군의 식수를 차단하였고 버틸 수 없게 된 폼페이우스군은 사절을 보내 항복 조건을 협상하고자 하였다. 몇몇 원로원 의원들은 탈영하여 카이사르를 찾아와 목숨을 구걸한다. 아침이 되자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군을 만나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지시한다. 이들은 시키는대로 한 뒤 울면서 목숨을 구걸하였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자비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면서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고 재산을 뺏기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그 뒤 카이사르는 자신과 적의 전사자를 집계했는데 그의 전사자는 200여 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폼페이우스군의 전사자는 1만 5000명에 이르렀고 포로는 2만 4000명에 달하였다. 또한 카이사르군은 폼페이우스군의 군단기 중 9개의 독수리 깃발과 180여 개의 수기(백인대기)를 노획하였다. 폼페이우스군 진영에 입성한 카이사르는 그곳에서 목격한 것을 이렇게 기술하였다. > (그곳에는) 장식용 나무들이 즐비했고, 엄청난 무게의 은제 접시들이 널려 있었으며, 신선한 잔디가 깔린 텐트, 담쟁이 덩굴로 뒤덮은 루키우스 렌툴루스와 다른 여러 사람의 텐트들, 그 밖에 그들이 과도한 향락에 빠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는 많은 증거들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이 기술은 비하의 의도가 담겨 있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파르살루스 전투의 소식은 각지에 퍼졌다. 폼페이우스의 압도적인 해군은 계속 군사활동을 활발히 하여 일부는 브룬디시움을 철저히 봉쇄하고 일부는 시칠리아 섬을 공격하였다. 시칠리아의 메사나(메시나)는 매우 위급한 상황에 빠졌는데 그때 파르살루스의 전투 결과가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폼페이우스군은 모두 해상봉쇄를 풀고 철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